양산은 아주머니, 할머님들이 쓰는 거라는 생각이 아주 예전부터 있었는데
(사실 재작년까지도 그렇게 생각했음)
실제로 써 보니까 이것만큼 자외선을 잘 막아주는 게 없었다.
모자나 부채 따위보다 훨씬.
끄워어어어 자외서어어어언 싫어어어
살타는 거 싫어어어
이런 어둠의 자식 같은(?) 나에게는
썬스틱이나 기타 제품 발라도 가림막이 또 있어야 하거든.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기도 하고. 일단은.
그늘이 날 쫓아 댕기는 게 얼마나 호강받는 기분인지 알아?!
그래서 양산을 쓰긴 쓰되 디자인적으로 좀...
덜 양산스럽고 우산 같은 거(?).
깔끔하고 얌전한 걸 쓰면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양산 따위야 항상 마트나 다ㅇ소나 어딘가에서
늘 요란한 열대과일처럼 주렁주렁 팔고 있잖아 특히 여름 즈음에.
설마 그중에 내 맘에 드는 게 하나쯤은 있겠지.
금방 찾겠지.
그러니까 인터넷 주문 안 해도 될 거야☆
뭐 그딴 걸 택배기사 아저씨까지 거쳐가며 사냐?
그분들 힘드시게...
라고 생각하며
집 근처 마트부터 시작해서 양산을 찾아봤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망할
양산업체들이 무슨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죄다
레이스에... 꽃분홍(또는 라일락색)에...
꽃이나 나비나 과일이나 공룡(?)처럼 뭐 어쩌라고 싶은 무늬가 박혀있고 막...
그나마 좀 심플하다 싶은 건 검은색 아니면 짙은 남색이야.
때는 안 타겠지만 더워 보여...
다른 사람들은
깔끔한 거 잘만 쓰고 다니는 거 같은데 뭐지?
그러다 한 여섯 번째인가?
(참고로 네 번째부터 약 올라서
'이렇게 된 거 진짜 마음에 든 거 아니면 절대 안 사'
라는 오기가 생겼었음)
집에서 꽤 떨어진 백화점에서
100%는 아니어도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걸 찾았다. 드디어.
색상도 스트라이프도 슴슴헌게, 씸플이즈베스트.
밝은 색 베이스라 햇빛 아래에서 펴면 기분 산뜻하고
파란색 계열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내 여름옷들이 파란색 위주라
이쪽도 색을 맞춰주는 게 통일성 있을 거 같고...
그냥 양산이 아닌 우양산이라
다른 제품보다 미묘하게 비싼 데다 좀 무겁지만
그래도 괜찮아 너로 정했다!
하고 사서 그런대로 애지중지 잘 쓰고 있었는데...
요번 여름에 강풍 한 번 씨게 맞더니...
그 있잖아, 우산이나 양산 반대로 펴지는 거.
바로 그 상태가 돼버렸다.
그리고 그때 나는 건너야 할 신호등 앞에 있었고...
이상하게 펼쳐진 양산 덜렁덜렁 들고 길 건너기 싫어서
빨리 수습한답시고 급한 마음에 '흡'하고 억지로 접었거든?
그랬더니 죽었어...
아니, 고장 났어.
으아아아아악 안대애애애애
무슨 부품이 빠지고 그런 게 아니라
쇠가 똑 분질러졌어 이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아 근데 너무한 거 아니냐?
쓴 지 겨우 1년 남짓 됐거든?
같은 바람을 받았어도(=뒤집혔어도)
옆사람 거는 멀쩡한데 왜 이것만?!
아니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취소취소
내가 꺼낼 때마다
'이 자식, 양산 주제에 묘하게 무거워 건방지게...'
라고 투덜대서 그런 거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제발 돌아와줘어ㅠㅠ
...이렇게 실컷 주접떤 다음에
이 양산 자식을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해봤다.
발품 팔았던 걸 생각하면 가능한 고쳐 썼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똑같은 걸 새로 사거나.
근데 그 먼데까지 다시 가도 같은 디자인을 계속 팔 거란 보장 없고
(그렇게 허탕 친 경험이 많다)
우리 집 근처에서 우산, 가방, 신발 수리하던 어르신들께서는
사업 철수하신 지 오래다.
새로 사다쓰지 누가 이런 거 고쳐 쓰냐 요런 추세거든.
나도 요놈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다른 양산, 우산이 고장 났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 뭐라 말 못 하겠고.
그래도 혹시나 해서, 집 근처 옷 수선 가게들을 돌아봤더니
글쎄 우리 집에서 엄청 먼
ㅇㅇ동 ㅇㅇ시장으로 가면 고칠 거래. 아마도
우와 귀찮아!! 날도 더운데!!
그 먼 백화점보다 훨씬 더 멀거든?!
그래서 그건 일단 제치고.
다시 집 근처 매장들을 돌아보며 혹시라도 있을
슴슴한 양산을 다시 찾아봤다. 혹시 또 모르잖아?
그새 양산업체들이 마음 바꿨거나
내가 모르는 새 유행이 생겨서 디자인들이 달라졌을지도...
아니, 없었다.
아제발 레이스 좀 쫌!!
색깔과 무늬 쫌!!!
그나마 색이 괜찮다 싶은 건
펭귄이랑 상어 캐릭터 막 박혀있고!!!!
(귀엽긴 한데 내 양산에는 넣기 싫다고)
아무튼 그렇게 새 양산 찾는 동안에는
저 고장난 녀석대신,
집에 있는데도 한 번도 안 쓰고 놔뒀던 놈을 쓰고 다녔다.
(내 돈 주고 산 거 아님. 우산이랑 세트로 선물 받은 거.
그 우산은 군말 없이 잘 쓰고 있다. 우산디자인에는 관대하기 때문)
꽃분홍, 꽃무늬도 아닌
블랙엔 화이트에다, 레이스도 작고 얌전하긴 한데...
(무게도 저 고장 난 줄무늬 놈보다 가벼움)
...땡땡이 무늬 별로야.
그래도 50보쯤 양보해서 땡땡이 무늬도 괜찮다고 치자.
꽃과 나비보다는 얌전하니까.
하지만 저 원 너무 큰 거 아닌가?
보통은 저거보다 작게 찍잖아? 뭐... 어쩌자는 거야?
보고 있으면 최면 걸릴 거 같네 막.
무슨 벌집을 표현하고 싶은 거야? 비율이 딱 그건데?
애당초 이 놈이 마음에 들었다면
내가 매장 순례해가며 새 양산을 찾지 않았겠지?
그래도 뭐 어쩌겠어.
집에 있는 엄마 양산들보다는 나은걸.
아쉬운 대로 이걸 썼다. 임시로.
근데...
못마땅해하며 쓰고 나간 첫날,
그날 집에 오는 길에 여우비 겸 소나기가 좍좍 내렸고,
이 녀석은 우양산이 아닌 일반 양산인데도
제법 요긴하게 비를 막아줬다.
(치마는 1/3 정도 젖었지만
이건 그냥 우산 쓸 때도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음)
짜아식... 기특한데?
딱 요 한 번 때문에, 살짝 얘한테 감동받고 정 들어가지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저 원과 여백의 비율이 신경 쓰였기 때문에
이 녀석은, 주력까진 아니고
내가 옷 단순하게 입었을 때 가끔 쓰는 서브용으로 쓰기로 함.
그리고 새 양산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저 줄무늬 녀석 100% 내 맘에 든 게 아니었지
무게라든가 이것저것 타협한 부분도 있었어.
인터넷에서 훨씬 더 맘에 드는 디자인을 사면 되잖아?
......
그냥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는데...
ㅠㅠ
라고 중얼대며 결국 인터넷으로
꽤 깔끔하고 단순해 보이는 우양산을 주문했고, 도착했다.
이 녀석의 열 받는 점은,
이렇게 사진으로 보면 괜찮아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속았지)
커! 크다고!!
가방 안에 쏘옥☆이 힘들다고!
그리고 무거워!!
저 줄무늬도 '양산 치고 살짝 무거운데?'싶었는데
그거보다 더 무거워!
무게: 땡땡이 < 줄무늬 < 저 녀석
심지어 내가 평소에 쓰는(땡땡이랑 같이 선물 받았던)
그냥 우산보다도 무겁고 커!!
아오 사진으로 보니까 또 안 그래 보이네!
직접 보면 재질도 뭔가... 텐트나 침낭처럼 번들번들하고 두껍고
맑은 흰색이 아니라 탁한 연회색에다...
하여튼 내가 생각했던 그게 아냐!
뒤집으면 꺼멓고.
뭐 이 점은 허용 가능하지만. 자외선은 잘 막아줄 테니까.
그래도... 뭔가... 이건...
그냥 우산인데?
우'양산'이 아니라 본격 우산.
아저씨들이 차 안에다 무심하게 던져놓을 거 같은 우산.
내가 뭔가 놓친 부분이 있었나? 제품 설명에서...
어떡하지? 또 하나 새로 주문해?
귀찮게 반품하고?!
......
아오씨 진짜!!!
결국 난 문제의 ㅇㅇ동 ㅇㅇ시장 ㅇㅇㅇ거리까지 가서
고장 난 녀석을 수리해왔다. 7천 원 들더라(교통비 빼고)
저 새로 산 놈은
15000원인가 들었고(배송비 포함)
나 뭐한 거야 대체
뭔 사람 엿 먹이는 퀘스트도 아니고
(자업자득이란 게 함정)
어쨌든
저 줄무늬 자식, 천년만년 쓸 거야
강풍 부는 날에는 절대 안 쓰고 제기랄
그나저나 새로 산 우양산(이라는데 아마도 그냥 우산)
저건 어쩌지?
고민하다가 아빠 드렸다.
양산말고 우산이라고 소개하면서.
엄마는 이미 (내 맘에 안 드는) 양산이 15개나 있으니깐.
아무것도 모르는 아부지는
뜬금없는 딸의 제안에 얼떨떨해하시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사랑해요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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