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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감상/아무거나 리뷰

[책] 엉터리 독후감 - 01

 

※ 전혀 진지하지 않음. 제목만 독후감이지 사실 아무 잡소리.

책의 내용은 별로, 또는 거의 안 나올지도 모름.

진짜 줄거리를 알고 싶으면 차라리 포털 검색을 하시길.

직접 책을 읽거나.

 

 

이번에 다룰 책은 이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제목 길다...)

 

민음사에서 나온 책이네. 여기 좀 유명하지 않나?

무라카미 하루키 이 분도 대단하시고.

2015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에 한 명.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음.

 

이런 분의 글을 안 읽으면 뒤쳐지는 기분이 들지.

그래서 전부터 읽긴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째 계속 미뤄왔다가 드디어 이번에야말로 각 잡고 읽어야지! 하고 마음먹음.

더 유명한 다른 책으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우리 집에는 이 한 권만 있어서 일단 이 책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는 사실 뻥이야

 

 

이거 안 읽었어. 한 페이지도.

(맨 처음 작가 소개도 절반쯤 읽다 말았다)

 

그냥 집에 이 책이 있었고, 왠지 있어 보여서 한 번 찍어봤음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안 읽을 듯.

지금(2019년 8월 초) 한일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데 이 분 일본 사람이잖아...

...는 그냥 핑계고 왠지 손이 잘 안 가서리.

 

뭐 언젠가는 읽겠지.

 

 

 

진짜 다룰 책은 이거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그리고 '사형선고'랑 '처형지에서')

어유 꼬질꼬질해라...

하긴 내가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도 옛날인데(급식 먹던 시절)

그 당시에도 이미 이 책 옛날 책이었거든.

 

방금 책 맨 마지막 페이지 발행일을 확인해봤는데

1999년... 히이익 20년 전 책! ㄷㄷㄷ

 

...뭐 어쨌든

책에는 유통기한이 없으니까.

 


 

이 책에 대해 말할 거 같으면...

 

(위에 적었듯) 내가 급식 먹던 시절에

여름방학 과제로 뭔가 독후감은 써야 했고

되게 귀찮긴 하지만 그 와중에도 뭔가 있어 보이고 싶으니까

집에 있던 책 중에 하나를 골라잡았는데

그게 바로 이거였다.

 

내 기준에 아주 생소하고, 낯설고, 작가 이름이 멋있어서.

그렇게 겉멋만으로 고른 책이라 내용 지루할 걸 단단히 각오해뒀는데

생각보다 웃기고(?) 재밌어서 인상 깊었고

 

그걸 토대로 아무렇게나 휘갈겨쓴 내 독후감(=숙제)을 읽은

(뭐라고 썼었는지 전혀 기억 안 난다 요만큼도)

국어 선생님이었나 다른 선생님이었나...

하여튼 과제를 내 주신 그분께서

'프란츠 카프카를 좋아하나 보구나...'로 시작하는

좀 감성적이고 길고 성의 있는 칭찬글을

빨간 볼펜으로 적어주셔서

(마찬가지로 그 첫 줄 빼고는 기억 안 난다 뭐라고 써 주셨는지.

확실한 건 다른 애들에게 보다 훨씬 길게 써주셨다는 거)

좀 뻘쭘하고 당황스럽고 왠지 죄송했던...

대충 그런 추억이 있음.

 

그 묘한 추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후 몇 번 이사 가고 자취도 해보고 몇 년 전 미니멀리스트 되겠답시고

안 쓰는 물건, 안 읽는 책들을 한차례 처분했는데도

이 책은 아직까지 내 곁에 붙어있다.

 


 

그 어린 시절에

이 책이 뭐가 그렇게 재밌었냐면...

 

시작부터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함

 

설마, 옛날 외쿡 작가 아저씨가

변신로봇이나 변신 소녀 같은 걸 다뤘을 리는 없고

제목에서 말하는 '변신'은 아마도

내면적인 변화나 성장, 상징적인 무언가나 그런 거겠지?

라고 짐작하며 책을 펼쳤는데

 

정말로 주인공(인간)이 벌레(곤충?)로 변했다는 점.

 

진짜 변신했어. 벌레로. 밑도 끝도 없이.

제목 그대로 변신. 반전이 없는 게 오히려 반전.

 

 

(그나저나 무슨 벌레였을까...

갈색에 딱딱한 등에 더듬이가 있으면 바퀴벌레 같긴 한데

무수히 많은 작은 다리나, 기어 다닐 때 액체가 남는다는 거 보면

송충이나 지네류일 거 같기도 하고?)

 

게다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반응도 범상치 않음.

'으아니 내가 벌레로 변했어 이건 말도안돼애'

이러지 않고 꽤 차분하게(?)

'출근 어떡하지? 회사 사람이 오면 뭐라고 설명하지?'

이러고 있음. 뭐지 이 전개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쓸데없이 자세하고 치밀하고 몹시 그럴싸한

(벌레가 된 주인공의) 움직임이나 감각 묘사...

아니, 작가 선생님. 언제 벌레라도 돼보셨어요?

 

가족들도 주인공이 벌레가 된 걸 알고

(적어도 주인공보다는 현실적으로) 많이 충격받긴 하는데

그래도 계속 데리고 살아ㅋㅋㅋ

역시나 쓸데없이 디테일하면서도 덤덤한 일상 묘사랑 같이.

청소 담당 정하고, 주인공이 어떤 밥(사료?)을 좋아하나

이런 거나 확인하면서.

 

마지막에도

주인공이 죽었으니 비극, 새드엔딩인데

뭔가 밝고 활기차게 마무리된 것도 희한하고.

대체 뭐지 이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되게 황당하고 참신했고

바로 이런 점이 내 마음에 들었었다.

 

 

......

 

여기까지가

아무 걱정, 아무 생각 없던

태평한 급식 시절 때의 감상.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그때랑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

 

주인공 개불쌍해

ㅠㅠㅠㅠㅠㅠㅠㅠ

 

글 초반에 나온 주인공의 초연함은

사실 돈벌이에 너무 찌들어서 그런 거였고...

 

다른 건 둘째 치고,

그렇게 쟁여둔 돈이 있었으면서

그동안 왜 계속 아들만 빚 갚는 용으로 부려먹었던 건데요

그레고르네 아버지!

진작에 그렇게 자기도 나서서 일했으면 좋았잖아요?!

 

또...... 어렸을 때는 그냥

주인공이 사과 맞고 아파서 죽었구나 하고 넘겼는데

사실상 체념 섞인 자살이었고ㅠㅠ

 

게다가

작가가 생업과 글쓰기를 병행했고

신경과민에다가 아버지 눈치를 엄청 봤다는 걸 알고 나니까

(어렸을 때는 이 점을 흘려 넘겼었다)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이 글을 썼을까 싶기도 하고.

특히 마지막, 주인공이 죽은 후

집안에 활력과 희망이 도는 장면을 쓸 때.

 

어린 시절에 읽으면서 'ㅋㅋㅋ'했던 걸

전부 'ㅠㅠㅠ'로 바꿔야 할 글이 돼버렸음.

 

이렇게 소감 달라지는 건

다른 단편 두 개도 마찬가지였다.

 

 

 

'처형지에서' 마지막 부분.

 

'변신'처럼 어렸을 때는

그냥 독특하고 엉뚱하고 재밌다고만 여겼던

'처형지에서'.

 

(요약하자면, 전임 꼬장꼬장+잔인한 사령관이 만든

'죄인 몸에 죄를 글자로 새긴 후 찔러 죽이는 고문 기계'에 대한 얘기.

사령관이 바뀐 후 관리가 소홀해진 고문 기계는 고장 났고

고문받아 죽기로 된 가엾은 죄인은 기계 고장 덕에 본의 아니게 풀려나고,

전임 사령관 추종자 장교는 맛이 가서 스스로 고문 기계에 들어갔다가 죽고

그 모든 개판을 지켜보는 주인공=관찰자 연구여행가.

이 모든 섬뜩하고도 웃픈 과정이

쓸데없이 자세하고도 그럴싸하게 묘사됨. '변신'때처럼.)

 

이건 다른 두 소설만큼 인상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엔딩만큼은 옛날에 느꼈던 거랑 퍽 달랐다.

 

......흉흉해.

 

연구여행가가 왜 그렇게 서둘러 떠나려 했는지,

죄인과 병사가 왜 여행가를 따라가려 했는지 이제야 알게 된 나.

옛날에는 여행가는 그냥 갈 시간이 돼서 갔고,

다른 두 사람은 그냥 여행가에게 정들어서 따라온 건 줄 알았지.

 

 

그리고...

 

사실 이 단편이 이 책에서 맨 먼저 나온다

 

다른 두 편에 비해

'이건 별로 재미없다. 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거야? 갑자기 왜 죽어?'

이랬었던 '사형선고'...

 

다시 읽으면서 가장 인상이 바뀐 글은 이거였다.

저 부제 '펠이체 바우어양을 위한 이야기'.

바로 저게 가장 중요했던 거야.

암호문 해독하라며 같이 던져주는 단서용 글귀였던 거지. 말하자면.

 

펠이체 바우어양은 작가 프란츠 카프카랑

두 번이나 약혼했고 두 번이나 파혼한 상대다.

파혼 이유는 아마도 아버지의 반대.

 

저 글을 출판했을 때가

펠이체 바우어와 첫 번째 파혼한 다음이었는데

어쩌면 저 글은 소설인 척, (전) 약혼녀에게 빙빙 돌려쓴

설명 내지 변명 내지 사과편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저게 출판된 후 두 번째 약혼을 한 걸 보면

그 뜻이 그럭저럭 전달된 모양. 다시 파혼하긴 했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느낀 건

역시... 어릴 때 숙제나 시험 때문에 읽었던 책은

나중에 꼭 다시 읽어야 한다는 점?

아무 의무감 없이, 제대로.

 

그나저나,

어렸을 때는 정말 겉핥기로만 저 책을 읽었군.

근데 그 상태로 막 쓴 독후감에서

대체 무얼 보시고 그렇게나 꼼꼼히 글을 적어주셨는지...

당시 그 선생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던 건지

이건 아직도 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