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뤄둔 독후감이나 올리자.
(※ 제목만 독후감이지 사실 아무 잡소리, 혼잣말.
책의 내용은 별로, 또는 거의 안 나올지도 모름.)
뻥이 아니라 진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제목을 옮겨 적으려고 윗윗사진을 여러 번 다시 봤다.
'색채가 없는...'부분까지는 어떻게 외웠는데 '다자키' 부분부터 계속 막힘.
왜 이렇게 제목을 길게 지으신 겁니까 선생님?
'색다그'로 줄여볼까 했다가 관둠. 그냥 '색채가...'라고 불러야지.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는 얘기를 먼저 하자면
원래 이 책을 독후감 시리즈(?)의 떡밥 용으로 써먹을 생각이었다.
유명한 작가의 책 한 권을 먼저 디밀어 놓고
'뻥이야 (아직도)안 읽었어'이래 놓은 다음
실제로는 다른 책 독후감을 올리고 이런 식으로. 저번처럼.
그렇게 하면서 뭔가를 살짝 비꼬고... 싶었던 거 같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있어 보이고 싶으니까 괜히,
다 보이게 유명한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음......
뭐 하여튼ㅎㅎ.
그렇게 계속 '뻥이야' 용으로 써먹다가
나름 반전이랍시고 정말로 읽어서 진짜 독후감도 올리고
그래 볼 생각이었는데
같은 용도로 사용될 뻔했던 후보들. 연금술사와 흑산.
연금술사는 정말 읽으려고 꺼내놨다가 한 2주쯤 방치한 후 도로 넣었던 적이 있고
흑산은 책 제목보다는 김훈 선생님이 유명해서.
(이 분의 책을 이래저래 많이 추천받았었다. 괜한 반발심이 생길 만큼.
추천을 그것보다 덜 받았다면 읽었을지도. 원래 내가 이런 성격이다)
이런 책들을 먼저 내밀어놓고
정작 독후감은
생뚱맞은 라면책 독후감을 올린다거나...
대충 그런 시시껄렁한 장난질이나 치려고 했는데
계획이 틀어져버렸지.
고작 2편만에.
낚시용 사진 찍겠다고 저 '색채가...'를 꺼내놓은 후
도로 제자리에 놓는 게 귀찮아서 방바닥에 굴러다니게 놔뒀는데
있으면 눈에 보이고,
눈에 보이면 관심이 가고,
관심이 가면 궁금해지는 것처럼
정신 차리고 보니 붙잡고 읽고 있었다.
어쩌면 저 다른 두 권도 어느 날 갑자기 다 읽어버리고
진지하게 감동받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색채가...' 얘기로 돌아와서.
저 책은, 언제 왜 우리 집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내가 내 돈 주고 안 샀어. 선물 받은 적도 없어. 적어도 나는.
(지금은 외지에 사는) 동생 놈 방 책장에 꽂혀있었지만
거기 있다고 걔가 그걸 샀거나 받아왔다는 보장도 없고.
그놈 방을 다용도실 겸 창고로 쓰고 있어서.
하여튼 대체 저 책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꽤 오랫동안, 한 몇 년정도 거기 있었을 거다.
표지를(정확히는 하루키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곁눈질로 봐왔거든.
그랬는데도 나는, 어쩌면 끝까지 저 책을 안 읽었을지도 모름.
안 읽었을 수도 있었음.
근데 요래조래 계기가 생겨서 읽게 됐고
처음에는 '그래 어디 네가 얼마나 잘났나 보자'는 식으로
감히 건방지게도 튕기듯이 읽었는데...
놀라운 걸 넘어서 섬뜩함까지 느껴버렸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왜......
하필 고등학교 동창들일까?
왜 하필 5명?
(그거 말고도 비슷한 게 꽤 많았다
주인공의 반응과 행동과 생각 몇 가지가)
설마 1949년생 다른 나라 소설가가,
그것도 해외에서 상을 쓸어 담은 분께서
할 짓 없어서 내 뒷조사를 했을 리는 없고.
음......
뭐, 이런 경험은 나 한 사람한테만 있는 게 아닐 거야.
원래 고등학교 친구와
대학교 간 다음부터 쌓는 인간관계가 퍽 다른 법이고, 또...
친구들도 나이를 먹고 각자 입장이 갈리다 보면......
하여튼
모든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수에게 있음 직한 일이지.
저 책과 비슷한 일을 겪어봐서 공감 가니까,
그런 사람이 세계 곳곳에 많으니까 이 분 글이 널리 사랑받는 걸 테고.
그래, 우연이란 게 몇 번 겹친 거겠지.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무섭게 주인공에게 몰입하면서
시작부터 마음이 좀... 아니 꽤 아픈 상태로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초중반까지는
중간중간 끊어가며 읽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꽤 마음에 들었던 조연 하나가
(내 기준) 생뚱맞고 으잉스러운 역할을 맡아버려 가지고.
아니, 그게 잘못됐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대체 그걸로 뭘 표현하고 싶으셨던 건데요? 작가님?
...아버지 얘기까지는 좋았는데 말이지.
(그나저나, 하이다가 사라진 후,
급히 여자 친구를 만든 주인공이 조금 웃겼다
늘 담백하고 건조해 보이던 주인공이
그나마 인간적으로 당황했던 모습?)
그런 식으로
특정 캐릭터나 상황에 대한 감상이
또 휙휙 바뀌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기 싫어서,
그다음부터는 텀을 만들지 말고 날 잡아서 한꺼번에 다 읽어버렸음.
채소를 삶아서 잎에서 뿌리까지 다 먹어버리듯이.
그렇게 끝까지 다 봤더니...
(참고로 저 제목에 나왔던 '순례'라는 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고등학교 동창, 옛 친구들을 만나는 거였다.
그거 말고 다른 의미도 섞여있긴 했지만.)
분명 시작할 때는
주인공 쓰쿠루에게 감정 이입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다른 인물로 옮겨가게 되더라.
정말 의외였지만, 스스로 어느 정도 이해가 갔음.
또......
거의 마지막에 주인공 쓰쿠루가
차 안 핸들에 엎드려서 가슴 아픔이랑 숨 막힘 느낄 때,
다행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더라.
그리고......
소설에서 무슨 곡이 등장하면,
원래 알던 곡이 아닌 이상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그 곡의 곡조를 날림으로 상상하면서)
처음으로 그 곡을 검색해봤다.
유명한 소설의 유명한 곡이라 그런지 금방 나오더라. 고맙게도.
마지막은 열린 결말이었고,
전에 다른 글에다 장난스럽게
'아니,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라고 따지듯이 적었는데
그 아래에 같이 적었던 대로, 주인공이 잘 되기를 바랐음.
사실은 꽤 진지하게.
내가 그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겪으면서
가장 무서워했던 것과 가장 바랐던 게 이 글 안에 다 있었다.
정말이지 몇 년 전에 읽었으면 더 좋을 뻔한 글이었음.
왜 이걸 이제야 읽은 건지...
아니,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었음.
나도 그렇게 순례를 떠나 볼 생각은...
아직 없다. 자신감도.
아직도 뭔가를 더 많이 준비하고 갖춰놔야 할 거 같아.
그래도 언젠가는 갔음 좋겠다.
그래서
평생 안 읽을 수도 있었던 책을 읽은 것처럼
다신 못 볼 수도 있었던 사람을 또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소설처럼 될 거란 보장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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